[레드 기획] ‘작은 집 살기’ 두 번째 이야기, 공간 개조…

살뜰한 쓰임새의 공간을 얻고 짓누르던 짐을 덜어내며 위안을 얻었네


지금이야 집값이 강을 따라 나뉘지만 예전엔 한데 섞여 있었나 보다. 차 한 대 지나기 어려운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좁은 골목길엔 큰 집과 작은 집이 엮여 있다. 꼬불한 길을 지나 더 좁은 골목 안쪽, 들창이 커다란 집이 눈에 꽂힌다. 69.2㎡(21평)의 좁은 땅에 지은 36.36㎡(11평) 넓이의 작은 한옥은 얼마 전 이상헌·한지수씨 부부가 집들이를 마친 집이다. 분당의 105.8㎡(32평) 아파트와 맞바꾼 집이기도 하다.

작은 한옥에 볕 들 날

작은 한옥에도 있을 것은 다 있다. 기역 자 모양의 한옥 한가운데는 대청마루가 놓여 있다. 여기에 손님이라도 여럿 찾아와 접는 상을 펴고 둘러앉으면 금세 마루가 꽉 차지만, 마당으로 통하는 넓은 창과 하늘로 뚫린 천장 덕분에 이 집에서 가장 넓고 환해 보이는 공간이다. 마루에서 왼쪽으로 가면 부엌을 지나 서재로 들어서고, 오른쪽으로 가면 창문마다 창호지를 발라 은은한 빛이 스며드는 부부 침실이다. 이 집의 특징은 부엌이 서재로 가는 통로라는 점이다. 좁은 공간을 모두 활용하려고 부엌 한쪽에는 냉장고가 들어간 수납장을 짜넣고, 다른 한쪽에는 싱크대를 넣었다. 마당을 내다보며 부엌일을 할 수 있다. 부엌을 지나면 커다란 들창과 만난다. 벽의 4분의 1은 됨직한 커다란 창을 달아 한눈에 인왕산과 삼청동 전경을 내다보도록 했다. 들창 아래에는 누마루를 놓았다. 마루는 소파 노릇도 침대 노릇도 할 수 있다. 여기서 일없이 밖을 내다보거나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낮잠도 잔다. 소파가 텔레비전과 마주 본 집에서는 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작은 집에서는 방 하나도 한 가지 일만 하라는 법이 없다. 부엌과 마루, 서재 사이에는 미닫이문을 달았다. 문을 열어두면 집이 하나로 통하고, 닫으면 마루는 손님이 자고 가는 방으로 바뀐다. 밥 먹는 곳과 일하는 곳 또한 나눌 수도 틀 수도 있다. 수납공간도 알뜰하다. 부부 침실 한쪽 면을 당기면 커다란 옷장이 열리고 침실 창문을 둘러싼 벽 속에는 마당에서 열 수 있는 수납장이 숨어 있다.

남편인 이상헌 한신대 교수는 오래전부터 북촌에 살고 싶어 했다. 북촌문화운동에 가담하며 이곳에 사는 사람들과 이미 얼굴을 익혔다. 지난해 작은 한옥을 소개받았다. 아내인 한지수 투니버스 국장은 땅을 많이 깔고 앉아 사는 것이 불편하던 참이었다. 넓은 집, 큰 살림을 이고 지고 있는 것도 그렇지만 집값 오르기만 학수고대해야 하는 생활도 싫었다. 당장 이사를 결심했다. 그러나 1930년대에 지어진 이 한옥은 기둥까지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그대로는 살 수 없었다. 크게 뜯어고쳐야 했다. 부동산을 투자로 본다면야 층수도 높일 수 없는 작은 집을 굳이 돈 들여 고치는 것은 경제적 행위는 아닐 테다. 이상헌씨 부부의 집은 설계하고 공사를 마치기까지 7개월, 비용은 1억원 넘게 들었다. 하루이틀 만에 뚝딱 벽이 서는 서양식 목조주택이 아니라 일일이 짜맞추고 여러 번 색을 입히는 한옥이었기 때문이다. 집을 고치는 시간과 비용, 일일이 짐을 나르는 수고를 들였다. 가지고 있던 가구와 가전 제품은 대부분 버렸다. 냉장고까지 작은 것으로 바꿨다. 버리고 수고한 덕에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작은 집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힘들게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위안을 받는 느낌이다. 집에 있는 시간이 평화롭고 좋다.”(한지수) 이 집을 새로 고친 구가건축의 조정구 소장은 2001년부터 북촌에서만 40채 정도의 한옥집을 짓거나 고쳤다. 조 소장은 “한옥으로 옮아오면 삶이 다르게 느껴지고 더 편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작은 한옥에서는 그게 잘된다. 같은 한옥이라도 회장님댁을 짓다 보면 느낌이 안 나는데 작은 집을 고치면 집이 살아 있는 느낌이다”라고 했다.

버릴 것과 살릴 것을 가리는 작업

집값은 얼어붙었어도 서울 도심 일대에는 작은 단독주택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꾸준하다. 서울 성북동의 한 부동산중개인은 “나이 든 사람은 삼청동으로, 젊은 사람들은 성북동으로 많이 온다. 아파트 전셋값을 따라가느니 차라리 작고 오래된 집이라도 고쳐가며 살겠다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층수를 높일 수 없는 작은 집을 고치는 것은 경제적으로 타산이 맞지 않는다. 게다가 집을 고치다 보면 되레 크기를 줄여야 할 때도 있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 11번지로 이사온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유형건씨는 집을 고치며 방과 마루를 조금씩 줄였다. 원래는 단식원이던 이 집은 반듯하지도 않았고 뒷담에 붙어서 어둡기도 했다. 한옥 개조는 버릴 것과 살릴 것을 가리는 작업이다. 방과 마루를 줄인 덕에 뒤뜰을 얻었다. 인왕산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툇마루는 덤이다. 휜 기둥까지 들어내면서도 집의 80년 역사를 담은 대청마루는 그대로 남겼다. 서까래와 옛 창문의 모양도 살렸다. 집주인은 “처음엔 경치 좋은 정자 같은 집을 원했지만 마음을 비우고 아늑한 집을 얻었다”고 했다. “40평대 아파트에서 24평 한옥으로 이사오며 버린 짐이 트럭 2개 분량은 된다. 그렇게 버리고 나니 이사할 때는 1t 트럭 한 대면 되더라. 아파트에선 당연하던 살림살이들이 여기 오니 집채만큼 커 보여서 아직도 치우고 버리는 중”이라고도 했다.


디귿(ㄷ) 자 모양의 한옥에선 한편으론 부부침실과 대청마루가 이어져 있고, 다른 한편으론 아이방과 사랑방이 나란하다. 유형건씨네 집은 이사하며 부모의 공간과 아이의 공간이 서로 마주 보도록 했다. 부모와 자식은 부엌에서 만난다. 아파트에선 아이는 방문을 잠그고, 부모는 아예 문손잡이를 떼며 싸웠다. 이사하며 서로의 공간을 존중했더니 돌연 사이가 좋아졌다. 아이의 사춘기 이후 처음 맞는 평화란다. 작은 한옥이지만 이 집이 품고 있는 이야기는 다양하고 극적이다. 빛이 머리 위 창문으로 들어오는 어두운 방, 하늘이 보이는 화장실, 밝고 따뜻한 마루, 서까래 밑 다락방에다 부엌은 마당으로 드나들기 좋게 낮고 마루는 높다. 사랑방 창문들도 높이가 같지 않다. 빛이 들어오는 창은 높고, 내다보고 참견하는 창은 낮다. 창문이라고 다 같은 창이 아니다. 지나는 바람이 통하는 창문이 따로 있고, 집주인이 내다보고 이야기하는 창문이 따로 있다.

숨기고, 고치고… 작은 집의 드라마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신경옥씨는 “작은 집은 궁리하고 모험하기 좋은 곳”이라는 작은 집 예찬론을 편다. 신씨는 33.1∼66.1㎡(10~20평)의 집을 고치고 다듬은 이야기를 모아 지난해 말 <작은 집이 좋아>라는 책을 냈다. 한 공간을 여러 가지 쓰임새로 고치고 사람과 살림이 엉키지 않고 단정한 모양새로 바꾸다 보면 복잡하고 어수선했던 집이 다정하고 아기자기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란다. “큰 집은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다. 작은 집은 노동과 생각을 요구한다. 작은 손길에도 집이 확 달라지는 덕분에 작은 집은 고치는 보람이 더 크다”는 게 신씨의 주장이다. 공동주택에서 적은 예산으로 집안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 서울 강북의 방 2개짜리 작은 빌라를 고치며 방문을 모두 떼어버렸다. 안방은 거실로, 거실은 식당으로 바꿨더니 집이 넓어졌다. 서울 대치동의 49.6㎡(15평) 아파트는 부엌 싱크대를 베란다로 옮겼다. 전셋집이어서 확장할 수 없는 형편이라 거실 문틀과 문짝만 뗐지만 효과는 컸다. 좁은 아파트에 식탁을 두고도 여유 있는 거실이 나왔다.

굳이 집을 고치지 않아도 지을 때부터 작은 집의 미덕을 살릴 수는 없을까. 2년 전부터 대형 주택 시장이 가라앉고 오피스텔이 뜨자 초소형 공동주택의 화두는 ‘숨은 수납’이다. 우미건설은 경기도 화성 동탄신도시에 오피스텔을 분양하며 ‘수납증대 다락형 오피스텔 평면’을 선보였다. 이전부터 다락형 오피스텔이나 복층형 소형 주택이 있었지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다락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우미건설 설계팀 송영준 대리는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는 잘 쓰지는 않지만 큰 짐들이 있다. 잘 쓰지 않는 욕실 윗부분에 이 짐을 두도록 공간을 활용할 수 없을까 생각했다. 전 세대의 천장 높이를 일반 오피스텔보다 40cm 높은 2.8m로 만들고 높아진 공간에 상부장과 붙박이장을 설치해 수납공간을 두도록 했다”고 말했다. 송 대리는 건설사들의 오피스텔 수납공간 개발 경쟁을 ‘mm 전쟁’이라고 부른다. 1mm라도 줄이려는 건설사들의 설계 싸움은 3D 입체형이다. 다락형 수납공간을 만들려면 위층 욕실을 줄이고 맞춰야 한다. 모델하우스를 열 때까지 모든 아이디어는 극비다. 다락형 오피스텔은 저작권 등록을 했다. 집과 함께 제공되는 빌트인 가구도 개발 경쟁이 치열하기는 마찬가지다. 접이식 식탁이 잘 팔리자 최근에는 한 건설사가 빨래건조대를 수납장에 숨기는 아이디어도 내놓았다.

얼마짜리 집? 어떤 집!

작은 집을 선호하는 경향은 면적과 자산가치가 비례한다는 상식을 바꿔놓았다. 가회동 11번지로 이사온 유형건씨는 “아파트는 돈놀음이다. ‘몇 평이면 재산 얼마’라는 생각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규모가 작더라도 가치로운 집에 살고 싶다”고 했다. 부동산 활황기에서 벗어난 건설사들은 입주자들의 그런 생각에 눈뜨게 될까?

지난 12월16일 분양을 시작한 포스코건설의 ‘송도 더샵 그린워크’ 아파트는 중·소형 물량을 크게 늘렸다. 이 단지에서는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형이 1068가구로 전체 물량의 76%를 차지한다. 분양대행사인 내외주건 김신조 대표는 “단순히 소형을 늘리는 것만 중심이 아니다. 18평, 27평 이렇게 획일화된 평수였던 아파트가 전용면적 63~84㎡에서 다양한 규모로 나오고 있다. 게다가 서비스 면적과 베란다, 수납공간 등 면적만으로 말할 수 없는 부가적 요소를 늘리는 것이 추세다”라고 했다. 수요자들이 큰 집보다는 쓰임새가 많은 집, 비싼 집보다는 다양한 집을 원한다는 분위기는 일단 감지한 셈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신경옥씨가 말하는 작은 집 꾸미기

공간을 숨 쉬게 하라


1. 우리 집의 문제점을 적어보자

당장 해결해야 할 것들의 순위를 적은 뒤, 되도록 세세하게 해결 방안을 정리한다.

2. 버려야 할 살림과 꼭 필요한 살림을 나눠라

계획을 세워 한 공간씩 살림 덜어내기를 해보면 그것만으로도 공간이 숨을 쉰다.

3.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려라

거실을 꾸밀 때 남들 다 있는 살림살이를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그 공간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4. 우리 집에 어울리는 스타일은 따로 있다.

지금 갖고 있는 살림을 무시하지 마라. 비슷한 살림으로 엮어내야 어울리는 공간이 나온다.

5. 남의 손에 맡길까, 말까

집꾸밈 정보가 많아서 대부분의 일들은 직접 충분히 할 수 있다. 다만 비용을 들이기보다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나을 때가 많다. 신중하게 판단하라.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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