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대목인데… 손님 발길은 뜸하고 굴착기 소음만”

 

 


잇단 화마 덮쳤던 전통시장 등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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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일시장에서 상인이 상점의 화재 잔해를 치우고 있다. 지난달 말 발생한 화재 복구에 신경 쓰느라 설 대목을 앞둔 상인들은 제대로 영업조차 못하고 있다. 권솔 기자 kwonsol@donga.com

 

 

“말해 뭐 해요. 주변이 이 모양인데 손님이 오겠어?”

9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의 한 전통시장 순댓집 사장 이경임 씨(59·여)가 방진 1급 마스크를 살짝 내리며 말했다. 이 씨 가게는 지난달 12일 심야에 일어난 불로 전소된 점포 바로 옆에 있다. 이날 불로 전체 48개 점포 중 8개가 다 탔고, 10개는 일정 피해를 입었다. 불이 난 지 한 달이 다 돼가지만 이날도 굴착기로 상가 잔해를 수습하고 있었다.

이 씨 가게는 사라진 벽에 파란색 비닐천막을 쳤지만 공사 먼지를 막긴 역부족이다. 이 씨는 500만 원을 들여 타버린 지붕을 수리하고 다시 문을 열었다. 진열대에는 탱글탱글한 순대와 내장이 놓여 있었지만 이날 손님은 한 시간 동안 평균 2명. 그나마 한 명은 순대를 사가지 않았다. 이 씨뿐만 아니라 시장 상인들은 “화재로 설 대목을 놓치게 생겼다”며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인근 생선가게에는 녹아버린 피복 사이로 구리선이 눈에 띄었다. 냉동고에는 그을음이 여전했다.

아주 건조하던 지난달 전국 곳곳에서 불이 났다. 특히 낡은 건물이 밀집한 전통시장과 쪽방촌에서 빈번했다. 설 연휴(15∼18일)를 6일 앞두고 화재현장을 다시 찾았지만 명절 분위기는 찾기 어려웠다.

전통시장은 추석과 함께 1년에 두 번 있는 대목인 설 매출이 급감했다.

청량리 전통시장에서 젓갈 등을 파는 서상옥 씨(84)의 지난달 매출은 지난해 2월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당시 소방대 살수에 젖은 된장세트 100개를 버렸다. 서 씨는 “구청장과 서울시장이 다녀간 뒤로 보상 이야기가 나오곤 있지만 수백만 원 손해 볼 각오는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불로 상가 14곳이 피해를 본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영일시장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과일을 파는 무림상회 사장 고남숙 씨는 “엊그제 사과 860상자 주문이 들어왔는데 화재 뒤처리를 하느라 팔지를 못했다. 자식 등록금도 벌어야 하는데 어찌나 속이 상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날도 일부 상인은 불로 망가진 집기를 치웠다. 전기와 수도가 복구되지 않은 곳도 많다. 한 상인은 “수입 과일을 넣어둔 대형 냉장고가 불에 녹아버려 죄다 내버려야 할 판”이라고 했다.

쪽방촌 화재 현장은 제대로 수습되지도 않았다. 지난달 20일 방화로 5명이 숨진 서울 종로구 ‘쪽방 여관’은 겹겹이 쳐진 폴리스라인과 현장을 가리기 위해 임시로 덧댄 합판 등이 얽혀 을씨년스러웠다. 주민들은 “현장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여관 바로 옆 설렁탕 가게는 한 달째 설렁탕을 한 그릇도 팔지 못하고 보험금이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다. 사장인 60대 지모 씨는 “일수 대출을 하며 운영하는데 수입원이 없어졌다. 아내는 다른 식당에 그릇 닦는 일을 하러 나갔다”고 말했다.

60대 남성 1명의 목숨을 앗아간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화재 현장은 파란 천막만 씌워진 채 방치돼 있었다. 천막에는 ‘여기다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 양심이 있어야지’라고 쓴 종이 한 장만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한 주민은 “불이 나고 일주일은 구청에서 뻔질나게 드나들더니 불난 곳을 정리도 안 해줬다”고 성토했다. 쪽방촌 복지시설 ‘돈의동 사랑의 쉼터’ 관계자는 “당시 건물에 살던 5명은 뿔뿔이 흩어졌다. 사람이 죽어도 사는 게 급하다 보니 추모도 제대로 못 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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