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 임산부, 버스서 휘청…'양보'는 없었다

 

 

 

[서울 시내버스 임산부석 20곳 살펴보니, 비워둔 곳 1곳(5%) 불과…"명당이라 앉는다" 배려 실종]

0004089956_001_20180810050510410.jpg?typ

7일 오후 서울 한 시내버스 안에 만삭 임산부가 서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7일 오후 5시50분쯤 서울 한 시내버스. 퇴근길이라 좌석은 이미 꽉 차 있었다. 잠시 뒤 정류장에 버스가 멈췄다. 몸이 무거워 보이는 한 여성 승객이 탔다. 출산이 임박한 듯한 '만삭'의 임산부였다. 한손엔 짐까지 들고 있었다. 그는 맨 앞쪽 좌석 앞에 안전바를 잡고 섰다. 

교통 체증에 버스는 여러 차례 멈췄다 가길 반복했다. 임산부 몸이 이를 따라 휘청거렸다. 홑몸이 아닌터라 흔들림은 더 컸다. 

하지만 임산부 앞쪽에 앉은 승객은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주변 승객들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버텨야 할 시간은 길지 않은 듯했다. 두세 정거장이 지난 뒤 임산부는 버스에서 내렸다. 

서울 시내버스 '임산부 배려석'(이하 임산부석)이 무색하다. 핑크색으로 눈에 띄게 해놓아도 '배려 실종'이다. 의무가 아닌 탓에 뭐라 할 수도 없다. 그저 성숙한 시민 의식에 기댈 뿐이다. 하지만 그러는 새 임산부들은 버스서 고통을 겪고 있다. 때때로 만원버스에 난폭 운전까지 겹칠 땐 그야말로 속수무책, 울고 싶은 심경이다.

9일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에 따르면 시내버스 전체 좌석 수는 차종마다 다르지만 통상 24~25석(대형차 기준)이다. 이중 분홍색으로 표시된 임산부석은 한 좌석, 노약자 배려석이 4~5좌석이다. 서울 시내버스는 총 7405대이므로 임산부석은 7405석, 노약자석은 2만9620~3만7025석 남짓이다.

가뜩이나 적은 임산부석인데, 그마저도 배려를 찾긴 힘들었다. 머니투데이가 7~9일 서울 시내버스 20대를 살펴본 결과 전체 20석 중 임산부를 위해 비워둔 경우는 1건(5%)에 불과했다. 이 또한 배려를 위해 비워뒀다기보다, 당초 버스가 텅 비어 있는 상태였다.

왜 그럴까. 해당 버스 승객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갖가지 항변이 쏟아졌다. 

'별 생각 없이 그냥 앉았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임산부석에 대한 인지도, 배려 의식 자체도 높지 않은 것. 주부 손나정씨(37)는 "임산부석인 건 알고 있었는데, 자리가 있길래 그냥 앉았다"고 했다. 직장인 박모씨(41)는 "다리 아프니까 앉지, 별 이유가 있겠느냐"며 "임산부석인 줄도 몰랐다"고 날을 세웠다. 

임산부석이 '명당'이라 앉았다는 응답도 다수였다. 실제 임산부석은 버스 앞쪽에서 2~3번째 좌석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 버스 흔들림이 덜 하고, 하차시 문과도 가깝기 때문이다. 취재 결과 버스 앞뒤 자리가 있음에도, 임산부석과 노약자석이 먼저 차는 경우가 많았다. 대학생 윤형기씨(21)는 "만원버스라 사람이 많아지면 내리기가 힘들어 이쪽 자리에 앉는 걸 선호한다"고 말했다. 배려가 외려 '독'이 된 경우다. 

같은 대중교통과 비교해도 지하철보다 버스가 더 심해 보였다. 같은 기간과 시간, 서울 지하철 2·5·9호선 내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20석을 파악해보니 6석(30%)은 비워져 있었다. 좌석은 물론 벽, 바닥까지 핑크색으로 디자인한 덕분인지 승객들 인식이 더 높았다. 특히 자리가 비워져 있을 때 일부 승객을 제외하곤 앉지 않으려는 기류가 흘렀다. 

양보 없이 버티는 임산부들은 괴롭다. 속도 안 좋고 어지러운 와중에 1시간 넘게 버티는 경우도 있다. 힘든 몸에도 택시비 아끼려 참는터라 서럽기까지 하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0004089956_002_20180810050510443.jpg?typ

/사진=머니투데이db

 

 

5개월차 임산부인 직장인 오모씨(36)는 올해 어렵게 임신을 했다. 올 여름 폭염을 버티느라 무거운 몸이 천신만고였다. 그렇다고 출·퇴근할 때 택시만 타기엔 돈이 아까워 버스를 탄다. 회사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남짓. 하지만 양보를 받은 건 손에 꼽을 정도다. 손잡이를 잡고 악착 같이 버티느라 손에 굳은살까지 배겼다. 그런데도 양보는커녕 배를 밀치고 가는 승객도 있었다. 

오씨는 "임산부석은 기대도 안하고, 가끔 다른 자리가 나도 밀치고 앉기 바쁘다"며 "앞에 서 있어도 모른 척하거나,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많다.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배부른 티도 안 나는 초기 임산부들은 유산 위험이 더 높지만, 배려를 받기 더 힘들다. 핑크색 임산부 배지를 달아보지만 못 알아보는 시민들이 많다. 

이 같은 상황이라 가뭄에 콩나듯 배려를 받을 땐 고마운 마음이 크다. 7개월차 임산부인 이현정씨(33)는 "초기라 많이 힘들었을 때 버스를 타고 가는데, 한 군인 청년이 멀리서 달려와 좌석에 앉으라고 양보해줘서 눈물이 핑 돌았다"며 "배려가 의무는 아니지만 몸이 많이 힘들다. 시민 의식이 더 좋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번호 제목 날짜 글쓴이 조회 수 추천 수
인기글 봉화서 80대 男 총기 난사…면사무소 직원 2명 생명 위독 2018.08.21 메뚜기 116 2
870 김부선 딸 이미소, 이재명 논란 종지부? SNS글 화제 2018.08.14 메뚜기 1403 2
869 교육부 "오는 2021학년도 사립대 38곳 폐교 예상" 2018.08.14 메뚜기 130 0
868 기록적인 폭염…해운대 피서객 줄고 야간 물놀이 늘었다 2018.08.14 메뚜기 87 0
867 '안희정 무죄선고' 미투운동 앞날 영향은…"피해자들 좌절할것" 2018.08.14 메뚜기 301 0
866 [청계천 옆 사진관]‘차량 화재 논란’ BMW, 사장이 타는 차 뭔가 봤더니… 2018.08.13 메뚜기 465 0
865 서울교육청 '교사 자녀 전교 1등' 강남 여고 오늘 조사 2018.08.13 메뚜기 231 0
864 갓 돌 지난 쌍둥이 아들 두고..시신으로 돌아온 소방관 2018.08.13 메뚜기 513 1
863 작은 덩치로 멧돼지와 격투..등산객·주인 살린 충견 2018.08.13 메뚜기 420 0
862 폭염에 열받은 택배 상자, 갑자기 '펑'…근로자 2명 화상 2018.08.11 메뚜기 580 1
861 월소득 500만원 부부, 1억5672만원… 138만원 부부는 3억 육박 2018.08.11 메뚜기 762 0
860 조현병 숨기고 결혼한 남편, 시부모에게 위자료 받을 수 있나요 2018.08.11 메뚜기 546 0
859 흉기로 배 베이고 하반신 마비된 길고양이…경찰수사 2018.08.10 메뚜기 497 0
858 “피가 묻은 걸 봉지에 담아..” ‘백숙 집 대낮 살인사건’ 진실은? 2018.08.10 메뚜기 578 1
» 만삭 임산부, 버스서 휘청…'양보'는 없었다 2018.08.10 메뚜기 423 2
856 초등학생 오후 3시 하교 … 전업맘 "왜 맞벌이 때문에 내 아이가 피해를?" 2018.08.10 메뚜기 157 0
855 BMW, 유럽서 32만3천700대 리콜 공식 발표 2018.08.09 메뚜기 157 0
854 지쳐도 결혼 추진하는 이유? 미혼女 "‘나이 들면 더 불리해"-미혼男 "혼자살기 불편" 2018.08.09 메뚜기 351 0
853 서울 용마산에 산양 1마리 추가 확인…암수 1마리씩 서식 2018.08.09 메뚜기 133 0
852 서울 용마산에 산양 1마리 추가 확인…암수 1마리씩 서식 2018.08.09 메뚜기 43 0
851 [일회용컵 단속 일주일]“잠시 있다 나갈건데” 곳곳서 실랑이…‘종이컵’ 꼼수도 등장 2018.08.09 메뚜기 68 0
850 남해고속도로 졸음 쉼터서 BMW 또 화재…이번엔 730Ld 2018.08.09 메뚜기 76 0
849 67세에 쌍둥이 임신한 中 여성의 안타까운 과거 2018.08.08 메뚜기 821 3
848 원양어선에 불질러 보험금 67억원 타낸 원양업체 대표 구속 2018.08.08 메뚜기 143 0
847 [여성 노숙인 실태①]30대 그녀는 왜 노숙을 하는가 2018.08.08 메뚜기 387 3
846 2억 없어졌는데 2시간 뒤 늑장신고…수송업체 대응 도마 위 2018.08.08 메뚜기 13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