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의사는 왜, 수술할 때 장갑을 다섯 겹이나 꼈을까

 

 

그들만의 추악한 왕국… 일상적인 폭력에 우는 '노예 전공의'

- 요즘 군대도 안 그런다
전공의들 때리고 난 후 장갑 갈아 끼기 귀찮아 아예 여러 장 겹쳐 껴 
노조원인 간호사엔 조용

- 매맞는 전공의 20%
인사 안 했다고 '집합'…몇 시간씩 욕설·구타
"논문 안 써준다" 협박…수술에서 제외시키기도

- 병원 나갈 각오 않는 한
매뉴얼 있는 병원 17개뿐
피해·가해자 분리는커녕 문제 생겨도 유야무야
폭력 의사 징계는 난망



지방 국립대병원 정형외과 40대 A교수는 수술실에 들어갈 때 수술 장갑을 다섯 겹 낀다. 위생 때문이 아니다. 함께 수술실에 들어가는 전공의들을 구타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라텍스 수술 장갑은 무균 상태여야 하기 때문에 환자나 수술 도구 외에는 만지면 안 된다. 만약 이물질에 닿으면 장갑을 벗고 소독을 한 뒤 새 장갑을 껴야 한다.

A교수가 얇은 수술 장갑을 다섯 겹 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술실에서 전공의들을 때리는 게 일상이기 때문이다. 전공의들을 때리고 나면 장갑을 갈아 껴야 하니 아예 여러 겹 끼는 것이다. A교수에게 맞는 사람들은 폭력에도 아무 소리 못 하는 전공의들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전공의들이 실수했을 때 손이 나가는 건 당연하고 교수가 자기의 예상대로 수술이 진행되지 않거나 수술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다. 다만 A교수는 간호사들에게는 욕설조차 함부로 하지 않는다. 이들은 대학병원 노조에 가입돼 있기 때문이다.

이 폭력 교수를 거친 한 전공의는 "A교수는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다닐 정도"라며 "의국(醫局) 전체가 (A교수가 전공의들을 때린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십여 년간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A교수는 여전히 현직 교수로 일하고 있다. 전공의 수련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명 '전공의법'이 작년 말부터 시행됐지만 전공의들은 여전히 폭행과 폭언에 시달리고 있다.

'노예'라 불리는 전공의

2014년부터 1년간 부산대병원 정형외과 전공의들이 같은 과 신모(38) 교수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해온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지난 23일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실에 따르면 이 학교 정형외과 전공의 12명 중 11명은 그로부터 상습적으로 맞았다. 전공의들이 폭행의 증거로 해당 병원과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자료 사진엔 무릎과 정강이, 복숭아뼈 부근까지 시퍼런 멍이 퍼져 있었다.

사진을 본 의사들은 "한두 차례 가볍게 맞은 게 아니라 수십 대를 맞았거나 야구방망이 등으로 때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전공의들은 바닥에 머리를 박고 엎드리는 '원산폭격' 자세를 한 채 신씨로부터 발에 차이고 머리를 밟혔다. 잦은 구타에 멍이 든 건 물론이고 무릎에는 피고름까지 찼다. 전공의들은 자기 무릎에서 주사기로 피고름을 뽑아내고 뺨을 맞아 파열된 고막, 야구공으로 때려 찢어진 머리를 서로 봉합수술 해줬다고 진술했다. 이들 사이에선 "부산대병원 사건이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며 "TV 프로그램에서 소위 '명의(名醫)'라 불리는 교수들이 폭언과 폭행 가해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느냐 묻는다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전문의가 되기 위해 의사들은 인턴(1년)과 레지던트(4년) 생활을 거친다. 보통 학사 졸업을 한 대학교 병원에서 하는 이 5년간의 생활을 전공의라고 부른다. 의사 자격이 있지만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교수로부터 전공과목을 심층적으로 배우는 기간이다. 그러나 전공의 과정을 거치고 시험에 합격해 전문의가 된 사람들, 현재 전공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이 시기를 '노예 생활'이라 부른다. 교수나 상급자인 선배들로부터 욕설이나 성희롱 같은 폭언을 듣는 건 일상이고 뺨을 맞거나 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하는 전공의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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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당하는 전공의가 전체의 20%

전북대병원 정형외과 전공의였던 B씨도 '악몽'을 겪었다. 교수와 선배가 가슴을 주먹으로 때리거나 정강이를 발로 걷어차는 건 하루에도 서너 번씩 벌어지는 일이었다. 교수가 발로 수십 대를 차 다리에 피멍이 들어 제대로 걷지 못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픈 티를 내면 더 욕을 먹기 때문에 최대한 덜 절룩거리며 회진을 돌았다. '집합'이라는 이름으로 전공의를 모두 불러 2시간 동안 10명의 선배로부터 폭언을 들으며 엎드려뻗치기를 했다. B씨는 "구타와 괴롭힘으로 악명 높은 곳이라 맞을 각오를 했었는데도 성인 남성이 견디기 힘든 정도였다"고 말했다. B씨는 해당 병원을 나와 폭행 가해자인 교수 고모(38)씨와 선배 전공의 주모(29)씨 등 3명을 경찰에 신고했다.

지난 4월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전공의 1768명 중 71.2%가 언어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 가해자가 선배 전공의, 교수인 경우가 각각 34.1%, 32.8%에 달했다. 폭행을 경험한 전공의도 20.3%였다. 이 중 교수로부터 맞은 경우가 약 29%, 선배 전공의로부터 맞은 경우가 24%에 달했다. 전공의들의 수련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한전공의협회에 "도와달라"며 문의하는 경우도 연간 300건에 달한다. 이 중 폭행·성희롱·성추행 상담이 20%다. 안치현 협회장은 "○○새끼, ○○년 같은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폭언의 경우는 문의나 신고조차 않을 만큼 자주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무릎 꿇고 빌어야 용서"

한 흉부외과 전공의는 "지방으로 갈수록, 병원 규모가 작을수록, 외과 계열일수록 전공의들에 대한 횡포가 심하다"고 했다. 수도권 밖에 있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병원의 경우 교수 수가 적어 인사라든지 논문 작성에 대한 권한이 전적으로 한두 명에게 집중돼 있어 교수나 선배 전공의들이 후배 전공의를 더 마음대로 주무른다는 것이다. 한 대학병원에선 1년 차 전공의가 교수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가자 밤 12시에 전공의 모두를 집합시켜 욕을 하고 폭행한 일이 있었고, 또 다른 대학병원에선 일주일에 한 번씩 전공의를 모두 소집해 한두 시간씩 얼차려를 주는 것으로 악명 높은 교수도 있었다. 전북대병원 폭행 피해자인 B씨는 "교수한테 한 번 찍히면 '논문 안 써준다'며 협박하기 일쑤"라며 "업계가 워낙 좁아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고 가면서 폭행을 정당화하고 앞으로 진로를 가로막으려는 시도까지 있었다"고 주장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외과 계열에서 폭행이나 폭언 피해가 잦은 이유도 따로 있다. 한 흉부외과 전공의는 "내가 수술실에 들어갈 차례인데도 그날 아침 교수 기분에 따라 제외될 수 있다"며 "그날만 제외되면 다행이지만 교수가 '앞으로도 쭉'이라는 한 마디를 더 붙이면 최대 4년간 해당 교수 옆에서 수술법을 배울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정형외과 전공의는 "어깨너머로 의료 기술을 배워야 하는 도제식 문화에서 교수의 수술방 열외는 전공의에게 엄청난 손해"라며 "그런 일이 생기면 교수를 찾아가 무릎 꿇고 빌어서 용서를 받든지 그 병원에서 나오든지 둘 중에 하나"라고 했다.

"3박자 맞아야 교수 징계 가능"

안치현 대한전공의협회장도 "부산대병원을 비롯해 교수가 파면되는 정도로 징계를 받는 건 피해자가 의사를 포기할 각오로 사건을 병원 외부에 알려 병원 차원에서 전수조사를 해 밝혀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피해자를 어떻게 구제할지 명확한 규정이 없는 데다 병원 측에서 사건을 덮는 데 급급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생활을 하다 희망하던 과 담당 교수가 회식자리에서 셔츠에 손을 집어넣는 등 성추행을 해 병원을 나왔다는 C(여·30)씨는 당시 정식으로 병원 측에 문제 제기를 했다. 하지만 해당 교수에 대한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난 뒤 해당 교수는 자신의 과에 들어온 40대 남성 전공의에게 줄기차게 성생활에 대한 질문을 던져 괴롭혔다. 그제야 병원 측에선 조사를 시작했고 C씨 사건까지 불거져 해당 교수는 파면됐다.

대한전공의협회 차원에서 전국 1000여개 병원에 피해자가 폭행·성추행을 당했을 때 가해자와 피해자 처리 규정을 문의했지만 17개 병원만 매뉴얼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등의 최소 조치도 이뤄지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월부터 산하에 수련환경평가위원회를 두고 있지만 위원 13명 중 전공의들의 상황을 대변하는 전공의 위원은 단 2명에 불과하다.

진로가 막힐까 봐 구타를 당해도, 폭언을 들어도 참는 피해자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 병원 측에 항의해도 사건이 유야무야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최근 강남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1년 차 전공의 두 명을 성추행하고 폭언한 의혹이 제기됐지만 피해자인 여자 전공의들은 간담회를 한다는 명목으로 매일 소환당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윤리위 제소 준비를 하면서도 "우리가 대체 왜 더 힘들어야 하는 거냐"고 토로하고 있다. 부산대병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전공의들은 계속되는 신씨의 폭행에 대해 십여 페이지의 증거 자료를 만들어 제출했지만 병원 측은 신씨에게 3개월 정직처분을 내린 뒤 정교수 임용 직전 단계로 승진시켰다. 국정감사로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고 나서야 신씨는 폭행 등의 혐의로 입건됐다. 신씨는 경찰 조사에서 "학생들 교육을 위해 한 일"이라고 진술했다.

서울 한 내과 전공의는 "폭력 교수가 징계받는 건 전공의가 의사를 포기할 생각으로 덤비고, 전공의 부모가 '빽'이 돼줄 수 있을 만큼 힘이 있고, 해당 교수가 병원 내 정치 싸움에서 밀리는 3박자가 맞아야만 일어날 수 있는 아주 드문 경우"라고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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